21세기교회성장연구원

홈
사명선언문
원장프로필
교회성장
설교
교리
교회음악
도서안내
연락처

 

 

        

가계저주론은 병 주고 병 주는 이론

 

어떤 사람은 가계저주론을 병 주고 약 주는 이론이라고 말을 한 바가 있다. 그러나 나는 가계저주론은 병 주고 병 주는 이론이라고 말해야겠다. 왜냐하면 약이란 약리적 근거가 분명한 처방이지만 가계저주론은 성경적으로 합당한 근거가 전혀 없는 저주를 진단해 주고 십자가의 신학을 왜곡 내지 모독하는 신학적 해석을 근거로 소위 영적 전쟁을 처방하기 때문이다.

가계저주론, 그 실체를 밝힌다

미주 뉴스코리아 최근 기고문

    이윤호는 그의 책 "가계에 흐르는 저주를 끊어라" (123-5쪽) 에서 에스겔서 18장은 절대적 의미로 해석을 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즉, 유대인들이 자신들의 모든 책임을 조상 탓으로 돌리지 말라는 뜻이라는 것이다. 즉, 어떤 재앙들은 조상 탓이고 또 다른 재앙들은 자신들 탓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곳의 비유는 가정을 근거로 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은 성경을 자신의 관점으로 보고 사사로이 풀려고 하는 심히 무책임하고 위험한 해석 방법인 것이다. 오히려 본문의 바른 해석은 "다시는 이 속담을 쓰지 못하게 되리라" (2절)는 말씀에서 찾아야 한다. 왜냐하면 2절의 말씀 이후에 있는 비유는 2절의 원리를 설명하는 데 쓰인 자료이기 때문이다.이 말씀은 본문이 절대적 성격의 것임을 분명히 한다. 즉, 조상의 죄로 인한 저주를 그 후손이 받는다는 그릇된 속설을 앞으로는 결코 입에 담지 말라는 말씀인 것이다.

 

    또한 이 본문을 비유적 관점에서 볼 때 상대적 해석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 얼마나 터무니 없는 것인가. 이러한 이윤호의 관점으로 성경을 해석한다면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탕자의 비유에서 탕자를 맞으시는 아버지의 사랑은 변덕스러운 것이 되며, 따라서 회개하고 돌아오는 죄인을 받아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도 변덕스러운 것으로 해석될 것이다. 만약 이러한 식으로 성경을 해석한다면 성경의 모든 비유적 해석을 상대적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성경을 해석하고 이해하는 일에 무정부 상태에 준하는 커다란 혼란이 초래될 것이다. 그러므로 이 점에 있어서 이윤호는 성경의 바른 관점을 편의적 해석 방법으로 엉뚱하게 왜곡하려는 시도를 버려야 할 것이다.

 

 동영상

 

    저주에 관련해서 균형 잡힌 신학을 강조하는 이윤호의 주장은 일견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그는 축복과 관련해서 저주가 38번이나 등장하므로 축복만큼이나 저주를 강조해야 한다고 강변한다. 그러나 성경적 신학은 단어의 숫자만큼 강조를 해야 하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이것은 직장 일에 쏟는 시간이 기도하는 시간보다 많음으로 하나님을 뵙는 것 보다 직장 일이 더 중요한 것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 이치인 것이다. 축복과 저주의 숫자 만큼 축복과 저주를 강조해야 한다기 보다는 성경적 축복관과 저주관을 바르게 정립하는 것이 더욱 중요한 가치인 것이다.

 

    다시 강조하거니와 성경은 조상의 죄와 관련해서 후손들이 받는 결과들을 인정하지만 결코 그것은 조상의 죄로 인하여 대물림되는 저주를 말씀하는 것이 아니다. 6.25로 인해서 국가적 재난을 당하고 살아남은 후손들이 겪었던 어려움들은 이전 세대가 지은 죄의 결과를 후손들이 감내해야만 하는 일이었는지는 모르나, 결코 조상들의 죄의 저주가 후손들에게 대물림 된 때문은 아닌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이윤호가 나열한 모든 성경 구절들을 본다면 성경은 죄와 저주의 대물림이 아닌 죄와 저주의 결과 그 자체를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윤호의 주장은 성경적 저주의 신학을 왜곡하고 있다는 점에서 저주의 성경적 신학을 정립하는 작업에서 이미 자격을 상실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이윤호의 가계저주론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그의 저주에 대한 해석이 구원론에 미치는 영향이다. 그는 저주, 그것도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저주가 실제적으로 후손들, 심지어 그리스도인들에게까지 전해진다는 주장을 거침없이 한다. 그가 비록 신분상으로는 그리스도인들이 저주에서 해방되었으므로 그 신분을 이용해서 실제적인 저주에서 해방되어야 한다는 말을 하지만, 이것은 문제를 해결하기는 커녕 더 큰 문제를 야기하는 것이다. 죄와 이에 따른 결과인 저주가 칭의에 해당된다는 당연한 신학적 논리에 기초해서 본다면, 즉 죄를 용서받은 사람은 자신의 죄로 인해서 임한 저주에서도 동시에 해방되었다는 성경적 논리로 본다면 이윤호의 주장은 결국 그리스도인들이 신분상으로는 구원을 받았지만 실제적으로는 아직 구원을 받지 못했다는 말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구원론의 오류로 귀착되는 중대한 문제가 된다.

 

    장로교대.소요리문답이 가계저주론을 뒷받침 한다는 터무니 없는 이윤호의 주장을 반박하는 것은 본래 장로교 신학자들의 몫이겠지만 필자의 개인적인 견해를 이곳에 간단히 피력한다면, 그 문서를 작성한 사람들은 가계저주론이란 본래 염두에 두지도 않았었고 그곳에 언급한 저주라는 것은 본래 개인의 범죄에 따른 저주로서 조상으로부터 대물림되는 저주와는 근본적으로 성격을 달리하는 것이므로 이 문서가 가계저주론을 뒷받침한다는 이윤호의 주장은 마치 미국 헌법에 칼 막스의 공산주의 사상이 포함되어 있다고 말하는 것과 같으며, 백보좌 심판대에 마귀가 앉아 있더라는 말과 마찬가지로 황당무계한 말이 되는 것이다. 또한 역사적 정통 교회들의 교리들이 가계저주론을 뒷받침한다는 자신의 부당한 논리를 성사시키려면 문맥과 사상의 전반을 꿰뚫는 해석을 근거로 하고, 다른 역사적 정통 교리들 특히 자신의 교단이라고 자처하는 침례교 문서에서 정정당당하게 인용을 하고 해석을 해보라. 그런 연후에 또 정당한 비판을 기대하라.

 

       


© Copyright 2004 21세기교회성장연구원 All rights reserved.
June 15, 2004 8:46 PM

5612 James Ave. #407A Fort Worth, Texas 76134 USA
전화 817) 551-7348
Webmas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