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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계저주론은 악성 신학 바이러스
지난 9월 11일 미국을 뒤흔들었던 끔찍한 테러 사건과 관련해서 가계저주론에 매료된 사람들은 미국인 조상의 죄와 관련된 하나님의 저주가 먼저 그들의 생각에 떠올랐을 것이다. 왜냐하면 가계저주론은 사람들의 불행과 고통 및 자연적인 재앙들을 "가계를 통해 내려온 저주들" 혹은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저주들"과의 인과 관계를 통해서 보려고 하는 극단적 경향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렇듯 한 사람의 불행과 고통을 타인의 잘못과 직접 연결지어 생각해 보려고 하는 경향은 현대의 가계저주론자들에게만 국한 된 것은 아니다.
에스겔서 18장 1절에는 당시 유대 사회에 편만해 있던 이와 비슷한 잘못된 속담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아비가 신 포도를 먹었으므로 아들의 이가 시다고 함은 어찜이뇨." 죄와 관련되어 유포된 이 소문은 아버지가 지은 죄의 값을 아들이 치룬다는 뜻이다. 그러나 2절에서 하나님께서는 "너희가 이스라엘 가운데서 다시는 이 속담을 쓰지 못하게 되리라"고 맹세하시고 있다. 그리고 이어 4절에서 "범죄하는 그 영혼이 죽으리라"고 말씀하시고, 13절에서 "자기의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고 말씀하시며, 20절에서 "범죄하는 그 영혼은 죽을지라 아들은 아비의 죄악을 담당치 아니할 것이요 아비는 아들의 죄악을 담당치 아니하리니" 라고 말씀하시며, 24절에서 "그가 (악인) 그 범한 허물과 그 지은 죄로 인하여 죽으리라"고 말씀하신다. 즉, 하나님께서는 죄의 값은 범죄한 본인이 담당하게 되는 것이지 그것을 대물림 한다는 잘못된 생각을 다시는 품지 말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런데 성경이 이처럼 죄의 개인적인 책임을 강조하는데 왜 가계저주론자들은 조상의 죄와 저주가 후손에게 대물림이 되어 후손들의 삶에 여러 가지 불행과 고통과 재앙을 유발하고 있으니 그 저주를 끊어야 된다고 함부로 주장하고 있는가? 가계저주론자들은 그들 주장의 근거를 출애굽기 20: 5에 있는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 사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라는 말씀에서 찾는다. 그들은 이곳에서 죄와 저주의 대물림만을 강조한다. 그러나 성경 원어의 직역은 "하나님을 미워하는 아비로부터 하나님을 미워하는 아들에게로 이르는 삼 사대를 벌하신다"는 뜻을 담고 있다. 즉, 이 말씀은 조상의 죄의 영향을 받아서 조상의 죄와 같은 죄를 짓는 사람들에 임하는 하나님의 진노에 관해서 말씀하는 것이며, 삼 사대라는 말은 저주의 대물림이 아닌 조상의 죄가 후손에게 끼칠 강한 영향 (effect) 혹은 결과 (consequence)에 관한 말씀인 것이다.
즉, 하나님을 미워하는 사람들의 후손은 삼 사대까지 하나님을 미워하게 될 가능성이 많으며 그들이 조상의 영향을 받아서 조상과 같이 하나님을 미워하는 사람들로 살아갈 때 내리시는 하나님의 진노에 관한 말씀인 것이다. 그러나 가계저주론자들은 이러한 말씀의 참된 의미를 저주의 대물림으로 왜곡하고 있으며 그들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서 여러 권위있는 정통 신학자들의 글을 편파적으로 인용하며 마치 그들이 이곳에서 죄와 저주의 대물림을 주장하기나 한 것 처럼 자신들의 주장의 들러리로 세우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인용한 정통 신학자들은 한결같이 죄의 심각성과 결과 (대물림이 아닌 결과 그 자체) 그리고 죄의 개인적인 책임을 두루 강조하고 있다.
이와 같은 바탕에서 볼 때 가계저주론 사상은 비성경적인 것이다. 그러나 조상의 죄와 저주의 대물림 교리를 그리스도인들에게마저 적용하는 것을 볼 때 그만 아연실색할 일이 되는 것이다. 물론 가계저주론자들도 갈라디아서 3:13절에 있는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라는 말씀을 알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그동안 역사적인 정통 교회들이 믿고 가르치던 바--그리스도께서 대신해서 저주를 받으심으로 신자들은 자신이 저지른 죄로 말미암은 저주로부터 실제로 해방되었다--를 교묘히 정면 거부하고 있다. 그들은 그리스도인들이 신분상 저주에서 해방되었지만 조건적으로는 저주 아래서 살고 있다고 주장 (신학적 논리적으로 커다란 모순으로서 후에 이것에 관해서 자세히 언급을 할 것임)하므로 역사적 정통 교리와 별 차이가 없는 것 처럼 가장을 한다.
그러나 그것은 신학적 논리적 오류에 기초한 기만적 해석에 불과할 뿐, 실제는 그리스도인들이 조상으로부터 대물림 받은 저주 (자신의 죄로 말미암은 저주, 즉 죄의 개인적인 책임은 가계저주론에서 상대적으로 감소됨)의 존재와 영향력이 살아 역사하며 신자들이 그 속에 갇혀 살고 있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따라서 이것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상의 구속의 의미를 변질시키는 면에서 왜곡된 것이고, 그 설명에 있어서 기만적이며, 그 본질에 있어서 파괴적이고 (신자의 삶을 근거 없는 저주와의 전쟁으로 규정함으로), 역사적인 정통 교리 입장에서 볼 때 이단적 교리인 것이다. 또한 가계저주론의 이러한 특성은 그리스도인의 참된 영적 싸움을 변질시키며 역사적 기독교의 교리를 부패시키고 빠른 속도로 확산되며 정통 신학을 파괴하는 악성 신학 바이러스로서 한국 교계 차원에서 강력한 제동을 걸어야 할 것이다.
미국에는 커보키안이라는 죽음의 의사 (Doctor of Death)가 있다. 그는 사람들이 자살할 때 고통을 덜 느끼도록 독약을 처방해 주는 의사다. 그는 사람들을 독살하는 일을 계속해서 여러 번 감옥에 들어가기도 했지만 자기의 고집을 꺽지 않고 있다.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가계저주론" 주창자들은 자신들의 목적은 가계 치유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러한 목적이 '근거 없는 저주'를 처방해 주는 수단을 결코 정당화 시켜 주지 못한다. 죽음의 의사 커보키안이 사람들을 돕는다는 미명 아래 독살을 정당화 할 수 없는 것 처럼 저주의 메신저들도 치유를 목적으로 한다는 명분으로 '근거없는 저주'를 처방해 주는 일을 정당화 해서는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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