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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계저주론은 복음 전복 쿠데타
첫 단추를 잘못 달면 나머지 모든 단추들이 잘못 달리게 되는 데 이런 때 우리는 첫 단추가 잘못 달렸다고 지적해 줌으로 잘못을 시정해 주려고 한다. 이윤호 목사의 가계저주론은 저주에 관한 신학적 해석의 첫 단추를 잘못 달고 시작하는 이론임으로 그 문제의 핵심을 지적하는 가계저주론이라는 용어는 논리적으로 매우 타당하며 또한 공정한 것이다.
이 목사는 지난 글에서 "가계의 복이 존재한다면 가계의 저주 역시 존재한다는 신학적 명제만으로도 가계의 복과 저주의 신학적 정당성이 충분히 입증된다"고 했다. 그렇다면 제주도에 용두암이 있으니 제주도처럼 화산 활동으로 생겨난 하와이섬에도 용두암이 있다고 말해도 되는 것인가? 물론 천만부당한 주장이다. 위의 주장에 관한 한 이 목사의 논리는 이와 같은 용두암식 논리에 기초한 것이다. 신학적 정당성이란 신학적 상상에 기초된 것이 아니라 정당한 신학적 해석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이 목사는 필자가 언급한 "조상의 죄가 후손에게 끼칠 강한 영향 (Effect) 혹은 결과 (Consequence)"라는 표현이 용어상의 차이일 뿐 자신이 주장하는 "저주의 대물림"과 전혀 차이가 없다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사실은 천당과 지옥의 차이만큼 다른 말이다. 필자는 위의 표현을 사용할 때 집합적 연대성 (Corporate Solidarity)을 의미하지만 이 목사는 위의 표현을 집합적 인격 (Corporate Personality) 내지 죄의 연대성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세계적인 구약학자 월터 카이저는 Toward the Old Testament Ethics 라는 책에서 집합적 인격 (Corporate Personality)이라는 표현과 개념을 거부한다. 그 이유는 개인을 한 집단의 부속으로 보기 때문에 그 개인이 범한 잘못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 집단의 행동에 대해서 전적으로 책임을 져야 한다는 비성경적 개념이 들어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반면에 월터 카이저나 필자가 주장하는 집합적 연대성 (Corporate Solidarity)이란 한 개인이 어떤 집단에 소속되어 있을 때 그 집단의 죄에 대한 책임을 짊어지는 일과 상관 없이 그 집단과 운명을 같이 하게되는 경우를 말한다. 예를 들면, 선량한 아프카니스탄인들이 불량한 정부를 만나서 어려움을 당하게 되는 경우가 여기 해당된다. 그들은 타인들의 죄에 대한 저주를 담당하는 것 때문이 아니라 집단적 연관성 때문에 고난을 당하는 것이다.
이 목사는 지난 그의 글 결론에서 필자가 "한 개인의 죄 혹은 순종의 삶이 한 개인의 삶에만 영향을 미친다고 해석한다"고 말하면서 필자의 신학적 입장을 왜곡하고 있다. 이는 "조상의 죄가 후손에게 끼칠 강한 영향 (Effect) 혹은 결과 (Consequence)"라는 필자의 표현을 인용하면서 필자의 이러한 주장은 자신이 주장하는 것과 전혀 차이가 없다고 자신의 글 서두에서 말한 것과 비교해 볼 때 심각한 논리적 자가당착이자 기만적 논리 전개임을 알고 있는가! 이래서 필자는 지난 글에서 이 목사에게 정정당당하게 인용하고 논리를 전개하라고 주문한 것이다.
재삼 강조하거니와 성경은 조상의 죄가 자손들에게 영향을 끼치지만 그것은 저주의 대물림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죄의 단순한 결과를 감내하는 일이며, 죄에 대한 책임은 개인적으로 국한되는 것이라고 말씀한다 (겔 18:1-32 ;민 24: 16; 출 20:5; 왕하 14:6; 롬 8:3; 이 목사가 인용한 모든 성경구절). 저명한 구약학자 게할드 폰 라드는 그의 민수기 주석 (Deuteronomy, p.152)에서 아간 가문의 집단적 처벌 (수 7;24)이나 요압 가문에 내린 다윗의 저주 (삼하 3:29)와 같은 한 가문에 대한 집단적 책임 (Corporate Liability)은 언약서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것이라고 했다.
또한 Expositor's Bible Commentary는 출애굽기 20장 5절을 해석하며, "아버지의 죄를 반복하는 자녀들은 개인적으로 하나님을 미워하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므로 그들 역시 그들의 아비들처럼 심판을 받을 것이다. 모세는 신명기 24:16에서 이것을 분명히 말씀했다. 불순종의 영향은 얼마간 지속되지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영향은 훨씬 오래 지속된다"라고 쓰고 있다. 카일 델리취는 에스겔 18장 (p. 248)을 해석하며 "하나님께서는 그분을 미워하며 그 아비의 죄된 길을 따라가는 자녀들 위에 그 아비들의 죄를 갚으실 것"이라고 말했다. 개혁자 칼빈은 그의 에스겔서 주석 (Vol.2, p. 242)에서 조상의 죄가 후손에게 끼치는 영향을 설명하면서 인류에게 임한 죄의 저주는 아담 안에서의 원죄와 자신 스스로의 죄 때문에 비롯된다는 것을 함께 강조한다. 칼빈 사상에서 가계저주론을 발견하려는 것은 천당에서 마귀를 찾는 것과 같다.
이 목사의 가계저주론의 심각성은 구약의 저주 사상을 왜곡하고 있다는 사실 보다도 그 왜곡된 저주 사상을 이용해서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속의 의미를 변질시키고 복음적 구원관을 파괴하고 있다는 데 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저주의 존재와 영향력으로부터 해방되었다는 자명한 진리를 왜곡해서 율법의 저주 아래로 다시금 그리스도인들을 속박하려는 시도는 복음의 자유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며, 그리스도가 신자들을 신분상 구원했고 실제적으로는 구원하지 못했다는 기만적 이론은 복음의 근본을 파괴하는 복음 전복 쿠데타에 해당된다. 갈라디아서를 기록했던 바울이 이 시대에 다시 나타난다면 그는 이단적 가계저주론을 향해서 2,000년 전에 하신 말씀을 뇌성벽력같이 외치실 것이다.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요란케 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려 함이라.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갈 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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